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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이야기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 하는 바라나시...(1)

by bigmama 2013. 2. 18.

인도를 떠나온지 어느새 한달이란 시간이 흘렀습니다.

" 백수가 과로사 한다" 라는 우스갯 소리처럼 지난 한달은

저 개인적으로 무척 바빳던 날들이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인도 다녀온 후기를 올린다는것이 이렇게 늦어버렸네요..

 

자.. !

그럼 제가 여행했던곳중 바라나시에 대해서 제 느낌을 적어 보겠습니다.

 

바라나시...

인도 전체의 축소판..

개인적으로 오래전부터 가고 싶어 하던곳이라 인도 여행을 가기전부터 그곳은 꼭 가보리라 했던 곳이였습니다.

뭐랄까요?.... 어떤 막연한 동경심리라고 하나요?

그곳을 다녀 온이들이 하나 같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시간이 정지된곳"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 하는곳"

과연 그들이 말하는 시간이 정지되었다는것이 어떤 느낌이며, 삶과 죽음이 함께 공존한다는것이  어떤 모습인지

저는 제 눈으로, 오감으로 한번 느껴 보고 싶은 충동이 강했기에 더욱더 그곳을 가고 싶어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다녀와서 어떠 했는냐구요?...

글쎄요....

뭐라고 한마디로 "이거다" 라고 정의 하기는 어렵더군요..

다만... 제가 바라나시를 동경했던 많큼... 언젠가는... 언젠가는...

다시 그곳을 그리워 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은 들었습니다.

 

저는 바라나시를 2박 3일 일정으로 돌아봤습니다.

원래는 바라나시를 갈때는 침대칸 열차를 타고( 대략 13시간 걸린다고 하더군요) 올때는 비행기 (1시간 10분) 를 타고 오려고 했으나

안개로 인해 열차가 캔슬되는 바람에 그냥 왕복 비행기를 이용하기로 했습니다.

델리에서 비행기를 타고 바라나시 공항까지는 대략 한시간 십분 정도 걸렸던것 같습니다.

거기서 다시 우리가 머물기로 한 호텔까지는 택시로 한시간거리...

겐지스강 강가앞 호텔로 일반 호텔보다는 약간 비싼 호텔이였습니다.

 

 

 

 

제가 머물렀던 호텔의 내부 시설 모습입니다.

하루에 삼만원을 내는 객실로 한국의 여인숙보다 못한 내부 시설이였습니다.

그래도 일반 배낭객들이 머무는 게스트 하우스보단 최고급이였습니다.

(일반 배낭객이 머무는 게스트하우스 가격은 하루 \2,000원입니다. 젊은 친구들이 많이 애용을 하던군요..ㅋ)

 

 

 

 

 

인도는 ... 델리를 중심으로 북쪽은 겨울이 춥고 아래 지방은 따듯합니다.

그러다 보니 집안엔 이런 순간 온수기가 하나씩 있는데.. 이게 참..

온수를 펑펑 쓰다간 제겐 이 순간 온수기는 인도 생활중 아주 사람 미치게 (?) 만드는 것중 하나로

물통의 크키는 생수통 보다 약간 크며 한국처럼 바로 물이 데워지는것이 아니라 일정 시간을 기다렸다가(대략 10-20분)

써야 뜨거운물이 나오는 순간 온수기로서 저 처럼 등치가 있는 사람은 머리 감다가 찬물 벼락 맞기 딱이였습니다.

이것 때문에 인도에서 얼마나 고생을 했는지.. 한달 지내는동안 내내 적응하기 힘든것중 하나였습니다.

걸핏하면 샤워하다 찬물벼락 맞기 일수였으니깐요..ㅜ.ㅜ

 

인도는 여름이 길고 전력이 부족한 관계로 겨울을 나는 시설들은 많이 부족했습니다.

나중에 기회 되면 일상 가정 생활의 인도 모습을 사진과 함께 게재해 보겠습니다.

무튼.. 호텔 어디를 가나 이런 온수기는 하나씩 걸려있습니다.ㅋ.

 

 

호텔 창가에서 바라본 겐지스강가의 풍경입니다.

따사로운 햇쌀과 함께 여유롭게 유유자적하는 모습이 한가로워 보이더군요.

사실 우리가 델리를 떠날때 델리는 아주 추웠습니다.

 한국의 초겨울 날씨 정도..

그때 델리는 40년만의 강추위로 얼어 죽은 사람이 100명가량 된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그런지 길거리마다 불을 피워대는 바람에 밖깥에다 빨래는 못널정도였습니다. 내다 걸면 온톤 매케케한 연기 냄새로 옷에 그을림 냄새가

보통이 아니였거든요..)

 

강을 끼고 있어서인지 유독 보트가 많았습니다.

고기를 잡는데 사용하는 배이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관광객을 상대로 하는 유람선용으로 많이 쓰이고 있더군요..

 

 

강가 너머는 모래 둔지 입니다.

우기 (雨期)때가 되면 그곳은 물에 잠겨 모습을 볼수 없다고 합니다.

참고로 한국에서 출발할땐 겨울이 좋을것 같습니다.

우기땐 많은곳이 물에 잠겨 그 모습을 볼수 없답니다.

 

다시 이야기를 돌려서.. 점심무렵 호텔을 도착한 우리 가족은 허기를 달래기 위해

인도 안내 책자를 지도 삼아 한국 식당을 찾아 보기로 하고 밖으로 나와 강가를 따라

한국 식당을 찾아 강가를 걷게 되었습니다.

 

겐지스 강가를 따라 쭈욱 이어진 건물들의 모습입니다.

대부분은 호텔이나 상가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한가로이 겐지스강을 바라보며 유유자적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건물 곳곳엔 안내 간판과 벽화들이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여기도 계절상 겨울이여 그런지 곳곳에 겨울 파카를 입은 사람이 많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얇은 옷을 입고 있었습니다.

제가 인도 한달 살면서 느낀것은 인도는 부익부 빈익빈이 확실한 곳으로 아직까지도 생활 전반에 카스트제도가 공공연하게

자행되고 있었으며 겨울옷을 입는 사람들은 그나마 부자인 사람이 많다는것입니다.

그렇지 않는 사람들은 계절과 관계없이 허름하고 얇은 옷 한장으로 쌀쌀한 겨울을 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거리를 지나다 보면 많은 사람들이 낯선 이방인에겐 이렇듯 많은 눈길을 줍니다.

사실... 바라나시에서 가장 많이 만난 외국 사람은 한국 사람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마치 한국에 와 있는 기분이 들정도였으니깐요..

저는... 개인적으로 일본 사람으로 많이 보여졌던것 같습니다.크~

마치 1960년대를 연상케 하는 좌판입니다.

제가 바라나시를 찾은 날이 금요일이였던 관계로 주말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좌판이 꽤 많았던것 기억이 납니다.

 

 

아...!

이 모습... 지금도 이 사진을 보니 가슴이 쿵쾅 거립니다..

길을 쭈욱 걷다보니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이런 풍경이 많이 보이더라구요..

그래서 제 딴에 "아.. 거리 이발사인가보다..!"라고 생각을 했지요..

왜냐하면 인도는 거리 이발사가 많다보니 거리 마다 이런 풍경을 자주 보거든요..

그런데... 이게 저의 착각이였습니다.

이 모습은 장례 치르기전  모습으로...

죽은이의 장자.. 즉 큰아들.. 우리 나라로 하면 망자의 직계 자손의 첫장자가 머리를 깍는 모습입니다.

머리는 다 밀로 한쪽만 남깁니다 . 마치 말꼬리 모양처럼...

그리고 그는 장례 절차를 모두 진행 합니다.

 

아무튼  전 아무 생각없이 사진기를 들이대며 그들을 촬영하면서 길을 걸었는데 바로 이어진 곳이 화. 장.터..

말로만 듣던 그 화장터 였습니다.

화장터 주변은 많은 나무 자재들이 쌓여 있었고 검게 그을린 잿가루와 활활 타는 장작들이 이곳 저곳에서 검은 연기를 내고 있었이였으며

그 위엔 형체를 알아볼수 없는 검은 물체들이 누린내를 풍기며 타고 있었습니다.

 

곳곳에서 타는 시신들은 어느것은 나무 살돈이 없어서 그냥 속살을 훤히 다 내 보이며 타고 있었고

또 어떤 것들은 방금 태우기 시작했는지 얼굴이 검게 그을린채로 타고 있었으며 어느것은 다 발목이 보이고...

정말..제 눈엔 충격 그자체였습니다.

 

사실... 이런 모습을 볼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허기진 상태에서 무방비 상태로 이런 모습을 접하고 나니

그 충격은 ... 정말 헤아릴수 없을정도로 크게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습니다.

더군다나 제가 가장 가까이에서 본 시신는 돈이 없어 나무를 많이 구하지 못한 시신으로 나무가 모자라 시신위는 나무도 덮지 못한것으로

머리와 가슴은 타고 다리는 아직 덜 탄 상태의 모습이였으니깐요..

 

저는 그 자리를 빠져 나와 골목길에 들어가서 얼마나 헛구역질을 해댔는지...

빈속에 본 그 모습은 저의 뇌리에서 영원히 잊혀 지지 않을것 같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다시 그 모습이 머릿속에서 마치 방금전에 본 모습처럼 선명하게 떠오르는걸 보면...

 

그렇게 그 모습에 충격을 받은 저는 한동안 어지러움과 헛구역질때문에 쉬이 그곳을 떠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배고프다고 투덜 대는 작은 녀석의 한마디에 정신을 가다듬고 한국 식당을 찾아 미로 같은 골목을 더듬어 가며

책자에 나와 있는 한국 식당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강가를 끼고 돌면 이렇듯 작은 골목들이 마치 미로처럼 서로 얽히고 설켜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길을 잃기 일수 있고 자세히 봐두지 않으면 나오는 길도 못찾고 하루 종일 이 미로 속에 갇혀서 하루를 보내기 일수 있습니다.

그 정도로 이 미로의 범위는 넓고 끝없이 이어져 있습니다.

아마.. 이미로를 익히는대만해도 몇칠은 걸릴것 같다는 생각이....

우린 이 한국 식당을 찾기위해 이 미로속을 한참을 헤매다가 겨우 책자에 실린 한국 식당을 찾았습니다.

 

 

 

 

 

 

한국 식당의 내부 모습입니다.

대부분의 관광객은 이곳이 집결지처럼 이곳에서 만나 서로 정보를 교환하며 만남을 갖더군요..

음식값은 대체로 비쌋지만 한국 음식을 맛볼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많은 이들이 이곳을 물어 물어 찾아오더군요

저희역시 2박3일 동안 이곳에서 쭈욱 식사 해결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