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6가로 나가기 위해 종로꽃시장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늘 버스와 승용차와 트럭과 수레와 오토바이로 정신이 없던 꽃시장 골목이
조금은 한가롭게 보였다.
그동안 가끔 지나칠 때마다 꽃구경을 하고 싶어도
어디 잠시라도 정차할 상황도 안되는 곳이라서
늘 휭~지나가기 일쑤였는데
오늘따라 이게 왠 복이냐 싶었다.
슬슬 지나가며 차를 세울만한 곳을 탐색하다가
조금 여유로운 꽃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 잠시 내려서 꽃구경 시작..
대형화원과 달리 다양한 화초가 올망졸망 모여있는 모습이
마치 화단같아서 정감이 가고 꽃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다.
이름도 몰라요~ 성도 몰라~
종로 꽃시장은 골목 한켠에 길게 자리하고 있다.
모양만 보면 절대 모르겠는 묘목 앞에서 이름표를 훓어보며
나혼자 아하~끄덕끄덕..거리기도 하고
매실나무 한그루 사다가 집앞 화단에 심을까 잠시 갈등하다가
아서라 말아라..체념.
꽃시장에는 묘목을 사러오시는 분도 많고 화초를 사러 나오신 분들도 많았다.
지금은 꽃시장의 위치가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오래전부터 종로 꽃시장을 찾으시던 단골이신 듯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주 고객이시더라는..
한 꽃가게에서 천리향, 만리향 사진을 찍다가
꽃가게 여사장님과 잠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게 되었는데..
여사장님 왈..나는 꽃도 이뻐하지만 꽃을 찍는 모습도 이쁘게 보인다며
이 꽃도 찍어라~그래서 찰칵!
부겐베리아도 얼마나 이쁘냐고..이것도 어서 찍으라는 말씀에 찰칵~!
수국도 이쁘니 찍으라고..그래서 찰칵~ㅎ
그동안 꽃구경하면서 사진을 찍을 때
많은 꽃가게 사장님들은 별 관심을 보이지 않았는데
이 꽃가게 여사장님은 빈손으로 돌아서는 것도 개의치 않으시고
이쁜 꽃 많이 찍으라며 되려 권하셨다.
그분의 작은 배려와 마음씀이 사람을 얼마나 기분좋게 하던지..
사장님 정말 감사했습니다.
다음 방문땐 이쁜 화초 꼭 구입할께요..
그다음 옆집 모종가게 구경.
할머니 사장님의 손길은 곧 집을 떠날 모종을 정성스레 포장하시느라 바빴다.
텃밭을 푸르게 채워 줄 모종들이 싱그러웠다.
그 옆 동백나무 가게.
얼마만에 보는 동백꽃이던가.
이곳에서나마 동백꽃 구경..아예 쪼그리고 앉아서..
소매물도의 동백숲을 생각하며 작은 동백 하나 구입했다.
세월따라 함께 가며 친구로 삼을,
꽃봉오리 서너개에 붉은 겹꽃 한송이가 피어있는 어린 동백으로.
그 옆가게의 분재 구경도 한참..
우람한 나무를 축소시켜 고스란히 보여주는 분재는
언제봐도 경이롭고 신기하지만
가슴이 옥죄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다.
하마 15년여 전쯤일려나...
한창 분재를 좋아해서 갖고 싶어하던 때에
어린 단풍나무를 분재로 만들어 보겠다고
산에서 만난 갓 싹이 난 단풍나무를 배낭에 고이 모셔왔다.
두 해던가 세 해를 고이 키우니 키가 엄청 자라서
모양을 잡아줄려고 분재책을 찾아 읽다가
철사로 묶어야 한다는 둥 전지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둥..
독학으로는 도저히 와닿지않는 경지라서 그만 바깥의 화단에 심고 말았다는.
아무런 지식도 경험도 없으면서
어찌 그런 무모한 도전을 생각했는지 지금도 분재만 보면 그 일이 생각이 난다.
화단에서 몇해 잘 자라는 듯 보이던 단풍나무는
나도 모르게 언제 고사해 버렸더라고..
그 후 분재는 구경만 하는걸로..
천리향이 맘에 드신 듯 내내 쓰다듬으시던 할머니.
아마 데리고 갈 엄두가 안나셨을거라고..
볼일보러 종로에 나갔다가
꽃시장 구경 한번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