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둘레길이나 가볍게 걷자고 한옥마을에 주차를 하긴 했는데
걷기도 전에 지루한 생각이 들어서
한옥마을을 슬렁슬렁 거닐다가 인덕원 부근에서 산등성이로 오르는
작은 오솔길을 발견했다.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갈까..??
급 호기심 발동..!
참나무 잎이 수북이 쌓인 길..
북한산과 달리 돌맹이 하나 보이지 않는 푹신한 육산이었다.
갑자기 말끔하게 정리된 평평한 공원이 나오는데
아하.. 이곳이 대로에 걸쳐있는 굴다리 위에 조성된 공원이구나.. 생각하니
길의 흐름이 어느 정도 짐작되었다.
수북이 쌓인 낙엽이 짓이겨져 있는 걸 보니
사람들 왕래가 잦은 것 같았다.
여긴 아마도 산아래 아파트 쉼터..?
산길 주변에는 간이 의자도 마련되어 있었고,
빗소리를 상상하며 시도 한 편 감상.
내려가는 길을 확인한 후
우리는 좀 더 올라가 보기로 했는데..
이곳에 묘지가 많은 듯,
군데군데 훼손된 봉분 앞에 우뚝 서있는 석물이 존재감을 드러냈다.
얼마쯤 걷다가 안내판을 보게 되었고,
이 산이 이말산이라는 걸 알게 됐다.
매장 문화재의 보고라네..
이름 모르는 수많은 영혼들이 잠들어 있는 이곳.
오래전부터 방치되어 뭉그러진 봉분과 흐트러진 석물들을 보며
부모님 49제 지낼 때 암송하던 경이 생각나
마음속으로 주문을 되뇌었다.
지장보살.. 지장보살.. 지장보살..
혼령이시여..
혹여라도 마음에 맺힘이 없으시기를..
은평 둘레길이라 이름 붙은 이 길은
걷기에도 아주 편안한 데다 서오릉까지 연결된다기에
다음에는 서오릉까지 걸어보자며
호기심 가득한 마음으로 걷던 길이었는데,
아무렇게나 방치되어 있는 수많은 묘지를 만나게 되니
돌연 마음이 숙연해지고 불편해졌다.
북한산과 나란히 걷는 길..
가던 길 되돌아와 그냥 내려가기로..
계속 지장보살을 되뇌며..
지장보살.. 지장보살..
드디어 한옥마을이 보이고,
우리의 이말산 번개 탐방은 이렇게 끝났다.
이말산에 대해 아는 게 없어 검색해보니
해발 132m의 낮은 산으로
조선시대 내시와 궁녀, 역관이나 환관들의 집단 무덤터였다네..
옛날에는 경복궁에서 십리 이내에는
묘를 쓸 수 없게 되어 있어서
이말산이 공동묘지터로 쓰였다고 한다.
외국에 가보면 주거지 바로 옆에 공동묘지가 있는 데다
정성 들여 이쁘게 치장해 놓았기에
삶의 한 부분으로 자연스레 보이던 풍경이었는데,
말로는 매장문화의 보고라면서도
폐가와 같은 을씨년스러운 모습으로 방치된 궁중 묘지들을 보면
아직도 우리에게 묘지는,
가까이 하기엔 많이 멀고 꺼림칙하게 생각되는 구역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