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곁에서 사는 나무는 꽃도 일찍 핀다.
산수유가 한창 꽃망울을 터트리던 지난 주말.
지난번에 흥국사에 갔다가
흥국사 둘레길이 있는 것을 알게 되어서
이번에는 둘레길을 걷기 위해 흥국사를 또 찾아갔다.
새로운 길에서 만나게 될 새로운 모습을 기대하며..
흥국사 입구에서 길 방향표를 보고 둘레길로 접어 드니
계절이 완전 거꾸로 되돌아간 느낌..!
등산로를 덮고 있는 수북수북 쌓여있는 갈색 낙엽에서는
온기 한점 느껴지지 않았다.
봄 찾아 나선 걸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같은 하늘 아래서 이건 너무한 거 아니냐고..!
초록빛 한 톨 보이지 않는 산자락을 훑어보며
탄식을 호흡 삼아
나무 계단을 오르는데
바스러지는 낙엽의 나직한 음성이 들린다.
너무 신경 쓰지 마라..
모든 것은 순리대로 흘러간다..
분별하고 싶은 마음의 스위치를 끄고
발밑에서 전해오는 감각에 열중하며 걷는 길.
눈앞에 단정히 놓인 평상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여기가 쉼터인가..
쉼터에 당도했으니 쉬어가야지.
따뜻한 둥굴레차를 마시며 텅 빈 하늘을 올려다 보기도 하고
에너지 충전을 위해 달달한 초코바도 먹고..
어머, 심봤다!!
한껏 부풀어 오른 진달래 꽃망울.
우리는 비움의 길을 지나고
바람소리 길로 접어들었다.
바람의 길은 제법 경사진 길이었다.
아직도 고운 빛을 잃지 않고 있는 붉은 단풍은
봄이 온 것을 알기나 할까..
2코스를 지나 1코스로 접어드는 길.
우리가 거꾸로 걸었다.
1코스 길은
내리막 길과 오르막 길이 번갈아가며 나타나
마치 시소를 오르내리는 것 같았다.
이 길을 따라가려면 바람도 힘겨울 듯..
양지바른 산 중턱에서 만난 진달래는
막 꽃망울을 터트리고 있었다.
야호~ 반가워.
1코스가 끝나고 흥국사로 내려가는 길.
흥국사 둘레길은 흥국사를 품은 한미산의 숲길이다.
가는 세월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아직도 깊은 가을에 잠겨 있던 한미산 풍경들..
참나무가 많아서 낙엽이 넉넉하니
산수유꽃 한창 핀 봄철임에도
낙엽의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즐기며
깊은 가을 속에 푹 빠진 산행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