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날 많이 걸은 탓에 피곤했는지
아침에 눈을 뜨니 해가 중천에 떠있다.
이런.. 강릉 앞바다에 와서 일출을 못 보다니.. 쯧!
눈 비비며 테라스로 나갔더니
8시쯤이었는데도 아침 햇살에 눈이 시렸다.
아쉬운 데로 편의점 커피 한잔을 뽑아서
뜨거운 물을 듬뿍 넣고
송림 그늘에 앉아 둘이 나눠 마셨다.
알고보니 이 편의점 주인이 모텔 주인이었다.
편의점 앞 해변으로 나가 비어있는 그네를 타고
잔잔한 바다를 바라보는데 그렇게나 좋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곳에 머물기를 참 잘했다고..
체크 아웃 후
초당 두부 마을에 들러 아침을 먹고,
허난설헌 생가터인 초당동 고택을 둘러보기로 했다.
그동안 여러 번 강릉에 왔으면서도
허난설헌 생가터는 이번이 처음 방문이다.
기품이 느껴지는 단아한 모습의 한옥.
허난설헌 생가터라 생각해서 그랬는지
여인의 은은한 향기가 느껴지는 것 같았다.
꽃철이 지나니 방문객도 없고..
화단마다 빼곡하게 심긴 꽃나무들을 보니
엄청 아름다운 봄이 머물렀을 것 같은 느낌..!
한쪽 광에 디딜 방앗간이 있고
또 다른 광에는 땔감이 수북하게 쌓여있는 모습이
무척 인상적이었다.
일반 한옥집에서는 못 보았던 디딜 방앗간이
집안에 있는 것이 흥미로웠다.
기와 조각을 쌓고
기와지붕을 얹은 굴뚝의 조형미가 멋졌다.
작약꽃이 한창일 땐 얼마나 황홀한 꽃밭이었을지..
시든 작약꽃들을 보니,
이왕에 조금 일찍 왔더라면 참 좋았을 것 같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조선시대 여성이었던 허난설헌은
시인이며, 화가이며 홍길동전을 쓴 허균의 누나라는
짤막한 지식만 알고 있기에 그녀의 삶이 궁금해졌다.
안채에는 허난설헌의 초상화가 모셔져 있고
그녀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
<연꽃 따는 노래>
가을이라 맑은 호숫물 옥돌처럼 흐르는데
연꽃 피는 깊은 곳에 난초 배를 매어 두고
물 건너 임을 만나 연밥을 던지다가
저 멀리 남이 봤을까 봐 반나절이나 부끄럽네..
여인의 수줍은 감성이 느껴지는 아름다운 표현에
덩달아 마음이 설레기도 했다.
<아들딸 여의고서>
지난해 귀여운 딸애 여의고
올해도 사랑스러운 아들 잃다니
서러워라 서러워라 광릉땅이여
두 무덤 나란히 앞에 있구나
사시나무 가지엔 쓸쓸한 바람
도깨비불 무덤에 어리비치네
소지 올려 너희들 넋을 부르며
무덤에 냉수를 부어 놓으니
아무렴 알고말고 너희 넋이야
밤마다 서로서로 얼려 놀테지
아무리 아해를 가졌다 한들
이 또한 잘 자라길 바라겠는가
부질없이 황대사 읊조리면서
애끓는 피눈물에 목이 메인다.
시를 읽는 동안,
자식을 잃은 어미의 애달픈 단장의 아픔이 느껴져서
순간 목구멍이 꽉 막히는 것 같았던 느낌..
여인에게 제약이 많았던 조선시대에 태어났어도
자신의 예술세계를 통해
외로웠던 삶을 불꽃처럼 꽃 피운 여인 허초희..
생가 앞마당으로 나오니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야자수 매트가 깔린 길을 따라 걸으며
솔 숲 산책.
작은 솔방울들이 발에 채일 때마다 솔향이 폴폴..
이 개천을 건너면 경포호수가 나온다네.
소나무들은 사진에서도 확인되듯,
내 두 팔로는 도저히 안을 수 없는 우람한 아름드리였다.
주차장으로 되돌아가다가
소나무마다 번호표가 붙어 있는 걸 뒤늦게 발견했다.
지금은 소나무들도 살기 힘든 세상인데
보살핌을 잘 받고 있는 것 같아 그나마 다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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