윗층에는 70대 노부부가 살았다.
십여년을 넘게 위.아래층으로 살았으니 하마 50대 중후반부터 보며 지냈으리라.
딸하나,시집보내고 일선에서 물러난 뒤론 두분이 아웅다웅 사셨드랬다.
작은 체구지만 목소리는 쩌렁쩌렁하고, 한성질 할 것같이 눈매에 힘이 들어가 있던 아저씨였다.
술도 꽤 좋아하시는지 부부가 싸우는 소리도 심심치않게 들을 수 있었는데...
두해 전 어느 날 우연히 현관 앞에서 마주친 그 할아버지는
뜻밖에도 병색이 완연하니 많이 수척해져 있었다.
나중에 전해들으니 신부전증으로 약물투석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머니도 건강이 좋지 않고 관절염으로 고생하고 계신 상황이었다.
아! 그러셨구나...
그나마 병세도 악화되고 가끔 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 가는 경우도 생기다보니
외출도 어렵고 집안에서 겪어야할 고통이 이만저만이 아니실터라.
작년 여름 무더위에.
주민모두가 온 사방 창문들을 너나할 것 없이 열고 사니
큰 소리가 나게 되면 주변집에서는 쉽사리 듣게 되는데
할아버지의 외침과 막대기로 방바닥을 두들기는건
이른 아침이나 낮이나,한밤 중 새벽녁도 가리지 않았다.
그 외침이란게 처음에는 할머니를 부르며 무언가를 해달라는 소리였는데
도우미도 없이 불편한 몸으로 홀로 간병을 하기도 만만치 않았겠지만
할머니가 반응을 안하시는건지,주무시는건지...아예 묵묵부답!!
그러니...크게,더 크게 부르다가, 고함을 치다가, 막대기로 바닥을 치다가, 종당에는 욕을 하는 것이니
아랫층에 사는 우리는 새벽녁에도 고함소리와 쿵쿵거리는 소리에 잠을 깨야만 했다.
많은 주민들이 관리실을 통해서 부탁했지만 달라지는건 전혀 없었는데
환자분이라 고통스러워서 그렇겠지..이해는 하면서도 정말이지 매일을 들으려니 죽을 맛이었다.
우리 집은 편히 잠못드는 날들이 많아졌다.
마침내 윗층에 도우미 아줌마가 들락거리면서 그나마 낮에는 조금 뜸해졌고
가을이 되고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자 이집 저집 창문들이 닫히니
여전한 고함소리도 아주 실낱같은 소리로 들릴 듯 말듯 작아지고...
그렇게 비교적 예의 평온한 기운으로 돌아간 즈음.
첫추위가 온지 얼마안돼
이른 새벽부터 윗층과 바깥의 부산함과 두런거림에
뭔가 심상치않은 기운이 느껴져 밖을 내다보니 응급차와 경찰차.그리고 경찰들.
또 응급상황이 발생한건가? 했는데
내지르던 어느 여인네의 통곡소리에 등골에서 전율이 흘러내렸다.
돌아가셨다네...새벽에...
연락을 받고 달려온 할아버지 누님의 통곡!
올케에 대한 서운함을 온 동네주민이 들으라는 듯 토로하며 가슴을 치고 우셨다.
그렇게 할아버지는 고통스럽고 쓸쓸하게 이 세상을 떠났다.
두 부부의 삶에 행복했던 한때도 많았으리라.
같이 산 일생동안 무엇이 꼬였길래
노년에도 서로 애틋해하지 못하고 무심한 세월을 살게 했는지 모르지만
병석에서도 끝내 화해하지 못하고 쓸쓸히 떠난 할아버지.그리고 남겨진 할머니.
할아버지가 할머니에게 내뱉던 무뚝뚝하고 거친 말들과
자신의 건강이 안좋아 힘들긴 했겠지만 간병에 무성의했던(정황상) 할머니를 보며
사랑이 메마르고 신뢰가 없었던 노부부의 지난 시절의 팍팍한 여정이 그려졌다.
그 부부의 깊은 내막이야 알지 못하기에
겉으로 들어난 일련의 모습들에서 느낀 내 생각이니 잘못 알고있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말 내가 잘못알고 있길 바란다.
홀로 살고 있는 할머니는 기척도 없이 아주 조용하게 지내신다.
가끔 딸이 들락거릴 뿐..
그분이라고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부부는..
사는 순간은 정말 좋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떻게 사는것이 진정 좋게 사는것인가?...
해답이야 누구나 다 알고 있는 것들인것을.
* 오늘 우연히 마주친 할머니를 뵙고 지난 시간들을 생각하며 쓰다보니
생각지않게 긴 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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