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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

파인애플 장수

by bigmama 2014. 3. 21.

모임이 있는 날.

서오릉이 바라보이는 한정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근처 찻집으로 자리를 옮길까 하다가

그냥 한정식집에서 마련해 놓은 소박한 휴계실에서 믹스커피를 빼먹으며

이런저런 수다를 나누었는데

그 때 한 젊은이가 휴게실 문을 빼꼼히 열어보더니

한손엔 깍은 파인애플을 들고 또 다른 한손엔 작은 과도를 들고서 조심스레 들어온다.


처음보는 광경도 아니었기에 

그저 파인애플을 팔러 온 잡상인이겠거니 싶어서 별 신경도 쓰지 않고

이야기하는데 몰두했는데

우리쪽으로 온 청년은 깍은 파인애플을 권하며 맛을 보시라고 자꾸 권한다.







냉큼 받아먹기만 하고 안살 수 는 없는 노릇이기에 고개로 도리질을 하며

언뜻 얼굴을 보니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앳된 얼굴.

잠시 머뭇거리다가 받아들어 맛을 보는 둥 마는 둥하고 구입의사를 밝히면서 나와의 대화가 처음 시작되었는데...


젊은 총각이 열심히 사는 모습이 기특해서 사는거야...우리도 비슷한 또래의 아들이 있거든...했더니만 

저 결혼했는데요?? 그런다.

그 소리에 우리 일행들 모두의 관심이 모아졌는데

뒤이어 한다는 소리가 더 웃겼다.

실은 사고를 쳤거든요...히히히...


그 대답을 들은 우리는 폭소를 터트리고..그 후 자연스런 대화가 오갔다.

아니, 몇 살인데...? 스물 둘이요...

아내는?...스물 둘이요...

엄마가 뭐라 안그러셨어?....처음엔 죽일 듯이 그러셨는데 지금은 아기를 이뻐하세요...

아기 이뻐...? 네..이뻐요...근데 분유를 너무 많이 먹어요...그런다.

왜 모유를 먹이지 않고..? 젖이 잘 안나온대요...

언제부터 이 일을 한거니? 한 일년됐어요...

아닌게 아니라 파인애플을 깍고 있는 손을 보니 남자 손같지 않게 가냘픈 손가락이 사뭇 거친 일에 시달린 기색이었다.







그뒤로도 주거니 받거니 여러 대화가 오갔는데,,

애가 있으니까 이렇게 열심히 살게 되잖아..

그래..일찌감치 아기 낳아 키우고 나면 친구들이 부러워 할꺼야...했지만

위로랍시고 해준다는 말이 그외 달리 있을턱이 있나...

근데 많이 힘들어요..잘 팔리지도 않구요...

젊은 애기 아빠의 말이 힘없고 쓸쓸하게 허공에 맴돌다 사라진다.


우리 일행중 이미 네 명이 파인애플을 샀기에

저쪽에 계시는 분들께도 가보라고 했더니 쭈뼛쭈뼛 그들 쪽으로 가던데

그곳에서도 고맙게도 선뜻 구입하는 모습이었다.


밝은 웃음을 지으며 인사를 하고 나가는 자그마한 체구의 젊은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니

등에 진 짐이 한없이 크고 무겁게 보여서 애처롭기 그지 없었지만

그 짐이 힘들긴 해도 네가 살아갈 충분한 이유가 되고 의미가 되고 힘이 되는것이려니...

언젠가 이 때를 추억하며 그리워할 수 도 있을터이니...

부디 초심을 잃지말고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기를 바랬다.


그 청년의 열심히 사는 모습 덕분에

내 가슴에도 따뜻함이 가득 고이던 우연찮은 만남이었다.

지금 그대로의 마음으로 늘 행복하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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